diff --git a/_posts/2024-10-05-la_colmena_.md b/_posts/2024-10-05-la_colmena_.md deleted file mode 100644 index 11e673d167fb..000000000000 --- a/_posts/2024-10-05-la_colmena_.md +++ /dev/null @@ -1,243 +0,0 @@ ---- -layout: single -title: "카밀로 호세 셀라 - 「벌집」" -categories: literature -tags: [cela, spain] -author_profile: false ---- - -# 1. 읽기 어려운 소설 - -![colmena_1]({{site.url}}\images\2024-07-14-cela\front.jpg){: .img-40-center} - -세상에는 참 다양한 "읽기 어려운 소설"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. -많은 비유와 상징을 사용해서 이해하기 힘든 밀란 쿤데라가 있고, 심리묘사를 상세하게 하느라 난해한 버지니아 울프나 프루스트가 있고, 병적인 인물들의 내면을 철저히 따라가야 해서 어려운 도스토옙스키가 있습니다. -그런데 「벌집」은 이들과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읽기 어려운 소설이었습니다. -「벌집」이 어려운 이유는 등장인물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. - -저는 어려운 소설을 읽을 때, 등장 인물들이 나온 페이지 수를 적는 습관이 있습니다. -일종의 색인을 만드는 건데요. -아무리 어려운 소설이라도 이 방법을 쓰면 등장인물을 다 파악할 수 있게 되어서 애용합니다. -이 소설을 읽을 때에는, 그 어느때보다도 필요해서 색인을 열심히 만들어봤는데, 제가 [기록](https://github.com/govin08/public/tree/master/2406_cela/colmena_characters.txt){:target="_blank"}한 바에 따르면 이 소설에 등장하는 등장인물은 300명이 넘습니다. [(계산 코드)](https://github.com/govin08/public/tree/master/2406_cela/count.py){:target="_blank"} - -조금 더 정확하게는 전체 등장인물은 309명이고, 그 중 이름이 언급되는 인물은 199명이며, 이름이 언급되면서 소설의 서사에 등장하는 인물은 116명입니다. -예를 들어 마르틴 마르코나 엘비라는 이름도 언급되고 서사에도 등장합니다. -한편, 엘비라의 아버지인 피델 에르난데스 같은 인물은 이름만 언급될 뿐 서사에 직접적으로 등장하지는 않습니다. -그리고 '플라멩고를 부르는 아이'는 여러번 등장하긴 하지만 이름이 언급되지는 않습니다. - -여하튼, 378페이지짜리 책에 309명의 인물이 나타나는 것이라면 한 페이지에 거의 한 명 꼴로 새로운 등장인물이 나타나는 셈입니다. -주요등장인물 116명으로 계산한다고 하더라도, 세 페이지에 한 명 꼴로 새로운 등장인물이 나타나는 셈입니다. - -이 소설은 구성 면에서도 특이합니다. 「벌집」은 총 여섯 장(章, chapter)과 에필로그 장으로 되어 있습니다. -그리고 각 장들은 여러 편의 글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. -가령 첫번째 장의 첫번째 글에서는 '도냐 로사'라는 인물이 나오고, 두번째 글에서는 '돈 레오나르도 멜렌데스'와 '세군도 세구라'가 등장합니다. -세번째 글에서는 다시 '도냐 로사'가 등장하고 '돈 하이메 아르세'도 나옵니다. -여기까지 읽으면, "네번째 글에서는 멜렌데스와 세구라가 다시 나오겠구나"하고 생각하게 되는데 네번째 글에서는 새로운 인물인 '도냐 이사벨 몬테스'가 '도냐 로사'와 함께 등장합니다. -이렇듯 일정한 규칙없이 산발적으로 이야기들이 나열되는 소설입니다. - -아무리 많은 이야기가 있다고 하더라도 만약 그 이야기들이 모두 독립적이라면, 그러니까 옴니버스식 소설이라면, 이전 이야기를 기억하지 않고 읽어도 되니 읽기가 수월할 것입니다. -그런데 이 소설은 각각의 이야기들이 조금씩은 얽혀있어서 어느 정도는 이전 이야기를 기억해야 다음 이야기를 읽을 수 있습니다. -또 등장인물들도, 조금씩 서로 연관되어 있습니다. -가령 마르틴 마르코는 훌리타 모이세스와 서로 아는 사이가 아니지만 마르틴은 벤투로와 친구이고, 벤투로의 여자친구가 훌리타라는 점에서 연관이 있습니다. -또한, 마르틴은 커피값을 치르지 못해 카페에서 쫒겨나게 되는데 카페의 주인인 도냐 로사의 동생이 도냐 비시타시온이고, 도냐 비시타시온의 첫째딸이 훌리타라는 점에서도 연관이 있습니다. - -미묘하게 얽혀있는 수많은 인물들과 수많은 이야기들은 마치 벌집과도 같은 큰 덩어리, 스페인 내전 직후의 마드리드 시내의 모습을 형성합니다. - -# 2. 도냐 로사의 카페 - -![colmena_2]({{site.url}}\images\2024-07-14-cela\colmena_2.jpeg){: .img-40-center} - -여러 등장인물들이 수많은 이야기 속에서 무질서하게 뻗어가는 듯한 소설이지만, 다행히도 소설의 공간적인 배경은 꽤 한정적입니다. -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입니다. -특히 소설의 첫 장은 도냐 로사의 카페에 한정됩니다. -그리고 이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은, 어떻게 보면 도냐 로사의 카페와 어떻게든 연관되어 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. - -소설은 도냐 로사가 운영하는 카페의 모습을 묘사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. -'도냐'는 영어에서의 Mrs에 해당하는 말이니, '도냐 부인' 혹은 '도냐 아주머니' 정도로 생각하면 될텐데요. -스페인 내전 직후 혹은 세계 2차대전 중의 혼란하고 빈곤한 시대에, 도냐 로사의 카페는 꽤 호황입니다. - -카페를 출입하는 손님들 중 몇몇은 경제적인 여유가 있는 중장년층입니다. -고리대금업으로 상당한 돈을 번 돈 트리니다드가 있고 인쇄소를 운영하는 부자 돈 마리오가 있습니다. -돈 트리니다드는 손자를 데려와 함께 놀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, 돈 마리오는 한가롭게 담배를 핍니다. - -중년의 남자들 중에는 일정한 직업이 없는 한량들도 있습니다. -늘 카페에서 한자리를 차지하여 큰소리로 떠들어대곤하는 돈 파블로와 도냐 로사의 동생 도냐 비시의 남편 돈 로케가 그들입니다. -시간이 많은 그들은 부인이 아닌 다른 여자에게 눈을 돌려 바람을 피기도 합니다. - -몇명의 아주머니들도 있습니다. -도냐 마틸데와 도냐 아순시온은 매일마다 카페에 앉아서 수다를 떱니다. -미망인인 그들은, 자식들의 결혼 문제에 대하여 늘 심각하게 토론합니다. -도냐 야순시온의 딸 파키타는 유부남인 대학교수 돈 호세와 동거중입니다. 돈 호세의 아내가 병에 걸리자, 그 여자가 죽고 대신 파키타가 돈 호세와 결혼을 할 수 있을거라고, 도냐 마틸데가 도냐 야순시온을 축하하고 있습니다. -어머니가 자식을 생각하는 마음은 당연하지만, 남의 불행을 바라면서까지 자식을 행복을 바라는 것은 참 아이러니해보입니다. - -엘비라는 카페의 단골이자, 유일한 젊은 여자 손님입니다. -'늙은 처녀'라고 묘사되는 엘비라는 주로 담배팔이소년 파디야와 함께 사소한 이야기를 나누며, 가끔 남자들의 대쉬를 받기도 합니다. -어떤 남자는 남몰래 엘비라에 대해 연정을 품으며, 엘비라가 엄격한 부잣집의 귀한 딸일 것이라는 환상을 품지만, 사실 엘비라는 끼니도 제때 챙길 수 없을 만큼 가난하고, 돈 파블로의 내연녀이며, 또 한편으로는 굉장히 불행한 과거를 지닌 여자입니다. - -손님들 외에 카페를 구성하는 사람들은 근로자들입니다. -도냐 로사는, 카페를 성공적으로 운영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유능한 사장이지만, 종업원들에게 가혹하게 대한다는 점에서 상당히 비인간적인 사람입니다. -종업원으로 일하는 페페나, 지배인으로 일하는 로페즈는 도냐 로사의 거친 욕설을 들으며 근무하고 있습니다. - -로페즈의 상황은 소설을 지나며 급변합니다. -로페즈는 10년 전, 고향에서 애인 마루히타를 임신시키고 도망치듯 마드리드로 왔습니다. -그러다가 어느 날 도냐 로사의 카페에 마루히타가 나타납니다. 마루히타는 그 사이에, 로페즈와의 쌍둥이 아들들을 데리고 돈많고 나이많은 남자 구티에레스와 재혼했습니다. -그리고 지금 구티에레스는 중병에 걸려 죽기 직전입니다. -마루히타는 남편이 죽고나서 수령할 막대한 재산을 가지고 로페즈와 재결합할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. -그 무서운 도냐 로사도 마루히타가 "카페를 인수하고 싶다"는 마루히타의 제안에 움찔합니다. - -종업원들 외에는 악사들이 있습니다. 피아노를 연주하는 마카리오와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세오아네는 카페 안의 분위기를 고급스럽게 만들어주지만, 정작 그들의 삶은 힘겹습니다. 마카리오와 그의 애인 마틸데, 세오아네와 그의 부인 손솔레스는 늘 경제적으로 쪼들리는, 불행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. - -# 3. 마르틴 마르코 - -![colmena_3]({{site.url}}\images\2024-07-14-cela\colmena_3.jpeg){: .img-40-center} - -도냐 로사의 카페 다음으로 이 소설을 묶는 요소는 마르틴 마르코의 존재입니다. -소설 속에 등장하는 꽤 많은 인물들은 불행하고 매력적인 젊은이 마르틴과 연관되어 있습니다. -마르틴은 카페에서 돈을 내지 못해 쫒겨나고, 추운 밤의 배고픔을 수돗물로 채울만큼 가난하지만, 근근이 목숨을 부지하며 살아갑니다. - -사는 곳은 부자인 친구 파블로가 얻어주었습니다. 파블로는 마르코를 일컬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. "그 놈은 정말 대단한 녀석이야. 더이상 대단할 수 없을 정도로 말이야. 그가 좀 더 가난하고 초라해보인다는 게 문제긴 하지만." - -그도 그럴 것이 마르틴은 대학도 졸업한 사람이고, 심지어는 잡지와 신문에 글도 기고할만큼 똑똑한 지식인입니다. -마르틴은, 마찬가지로 지식인인 파코와 자주 어울리며 파코에게서 읽을 책과 글을 쓸 종이를 전달받곤 합니다. -그런데 파코는 마르틴보다 상황이 더 나쁘면 나빴지 더 좋지 않습니다. -결핵에 걸려 매일 기침을 하는 파코는, 지독한 가난에 잘 먹지 못하고 약도 복용하지 못해 건강이 악화되고 있습니다. - -늘 배고픈 마르틴은 유일한 혈육인 누나 필로의 집에 가곤 합니다. 매형 로베르토와 마르틴은 사이가 좋지 않지만, 로베르토가 열심히 버는 덕에 필로를 보러 가면 저녁 정도는 먹을 수 있습니다. - -마르틴과 파코는 셀레스티노가 운영하는 조그만 술집에서 모여 이야기를 나누곤 합니다. -셀레스티노는 니체의 「아침 놀」에 나오는 '동정심은 지살의 해독제이다. 동정심은 우리에게 쾌감을 안겨줄 뿐만 아니라, 약간만 느껴도 우리는 우월감에서 오는 만족을 가득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.' 와 같은 구절을 좋아하는 니체 신봉자입니다. -마르틴은 술값을 치르지 못하고 외상으로 달아놓는 경우가 잦았습니다. -어느 날, 셀레스티느논 마르틴에게 외상 문제를 언급하는데 마르틴은 되려 셀레스티노에게 "당신이 니체를 읽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냐"며 언쟁을 벌입니다. -셀레스티노는 마르틴의 말도 안되는 비난에 화가 났지만,"맹목적인 분노에 몸을 맡기는 것은 짐승의 성질에 다가가는 일이다."라는 니체의 말을 떠올리며 마르틴에게 대응하지 않습니다. -나중에 마르코가 위험에 처하자 셀레스티노는 마르코를 구하려 하는 모습도 보입니다. -어쩌면 니체가 말한 '동정심'이 여기에서 발동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. - -셀레스티노의 술집의 또 한명의 단골손님은 경찰 가르시아입니다. -둘은 갈라시아 지방 출신이라는 데에 공통점이 있습니다. -가르시아는 아파트 경비원이자 동향 사람인 구베르신도와 친하게 지내는 사이입니다. - -파블로와 파코 외에도 마르틴에게는 친구들이 더 있습니다. -마르틴은 참 인기가 많은 사람입니다. -벤투라는 7년째 공증인 시험을 낙방한 "장수생"입니다. -수험생인 그는 공부에 매진하기보다는 아버지에게서 용돈을 타다가 여자친구 훌리타와 놀러다니기를 좋아합니다. -그래도 벤투라의 주머니 사정은 마르틴보다 훨씬 나았기에 벤투라는 마르틴에게 돈을 빌려주곤 합니다. - -마르틴은 길가를 걷다가 대학 동창 나티를 만나기도 합니다. -나티는 대학시절에 화장도 전혀 하지 않고, 여성참정권을 외치고 다녔던 털털한 여대생이었지만, 지금은 맵시있는 옷에 구두를 신고 여성스럽게 하고 다니는 여자로 변했습니다. -나티가 그렇게 변하게 된 데에는 그녀의 첫사랑이었던 마르틴의 영향이 있었을 겁니다. -마르틴은 나티와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고, 나티에게도 돈을 조금 빌린 뒤 헤어집니다. - -마르틴은 헌책방을 운영하는 친구 로물로를 만나기도 합니다. -로물로는 책 외에도 판화 작품을 팔기도 했는데, 마르틴은 누나 필로의 생일을 맞아 판화를 사다 선물하려고 합니다. -하지만, 나티에게서 빌렸던 돈을 도냐 로사의 카페에 흘리고 왔으므로 선물을 사지 못합니다. - -친구들과 만난 뒤 마르틴은 정처없이 걷습니다. -어디가 목적지인지도 모른 채, 무엇을 위해서인지도 모른채 계속 걷습니다. -군밤을 사먹기도 하고, 꽁꽁 언 수도를 틀어 물을 들이켜 배고픔을 달래기도 하고, 지하철을 타기도 하면서 밤거리를 계속 걷습니다. -경찰은 수상한 그의 모습에 신분증을 요구하기도 합니다. -벌써 오래전 신분증을 분실한 그는 경찰에게 오랫동안 변명을 해야 했습니다. - -춥고 시린 밤, 마르틴이 향한 곳은 돌아가신 어머니의 친구 도냐 헤수사네 여관이었습니다. -도냐 헤수사는 '필로 여관'이라는 이름의, 유곽 비슷한 것을 운영하고 있습니다. -마르틴은 여자를 안고 싶다는 마음보다는 인간적인 포근함을 느끼기 위한 마음에서 필로여관에서의 하루를 보냅니다. - -원기를 회복한 마르틴은 길을 나섭니다. -마침 그날이 어머니의 기일이었기 때문에, 어머니가 묻혀있는 묘지로 향합니다. -묘지로 향하는 발걸음은 왠지 가볍습니다. -마르틴은, '이제는 안정적인 직업을 찾아야지, 사회에 쓸모있는 사람이 되어야지, 돈을 벌면 누나에게 선물도 사줘야지' 하고 생각합니다. - -하지만, 같은 날 신문에는 마르틴을 수배하는 기사가 실립니다. -무슨 혐의로 수배당하는지는 소설 상에 언급되지 않지만, 아마도 죄없는 사람들을 수시로 잡아가곤 했던 프랑코의 독재정치 시기와 연관이 있을 것입니다. -마르틴의 주변사람들, 파코, 벤투라, 로물로, 필로, 셀레스티노 등은 일제히 마르틴을 걱정합니다. -어떤 불행한 일이 기다리고 있는 지 모르는 채로, 미래에 대한 희망찬 계획을 세우는 마르틴이 묘사되며 소설은 끝이 납니다. - -# 4. 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사람들 - -![colmena_4]({{site.url}}\images\2024-07-14-cela\colmena_4.jpg){: .img-40-center} - -셀라는 이렇듯 1943년 마드리드의 평범한 일상을 그려냈습니다. -셀라가 그려낸 일상은 때로 소탈하고 때로 적나라합니다. -도냐 로사의 카페의 사람들과 마르틴 마르코의 주변인물들은 참 인간적이고 평범해보이기도 합니다. -그러나 평범한 그들을 한꺼풀 벗겨보면 지독하고 끔찍한 마드리드의 실상이 드러납니다. - -청년 마르틴과 파코에서 조금만 시선을 돌리면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세계가 펼쳐집니다. -필로의 가정부이자, 마르틴의 애인인 페트리타는 마르틴의 가난한 상황을 안타까워합니다. -페트리타는 마르틴의 외상값을 갚기 위해 셀레스티노에게 몸을 던집니다. -인쇄소에서 일하는 파코의 애인 빅토리타도 비슷한 운명에 처하기 직전입니다. -빅토리타는, 결핵에 걸린 남자친구 파코가, 이대로 가다간 죽을 것이라는 절망감에 빠집니다. -단지 잘 먹지 못하고 약을 구할 수 없다는 이유로 파코가 죽어야 한다는 애달픈 상황에, 빅토리타는 마침내 결심을 하고 파코에게 -"젊은 여자라면 아무리 못생겼어도 돈을 벌 수 있어."라고 말합니다. -그런데 빅토리타가 돈을 벌게 되는 과정이 너무나도 자연스럽습니다. -이미 주변에는 빅토리타의 상황을 이용해먹으려는 사람들이 대기하고 있는 것입니다. -도냐 라모나는 우유 가게를 운영하는 사람이지만 한편으로는 뚜쟁이짓을 하고 있습니다. -형편이 어려운 어린 여자아이들을 돈많은 남자들에게 연결시켜주고 일정한 보수를 받는 일을 해오고 있는 것입니다. -그런 도냐 라모나는 '평범한' 사람입니다. -아까 언급한, 도냐 로사의 카페에서 매일 수다를 떠는 평범한 도냐 마틸데와 도냐 아순시온과 친근한 사이인 것입니다. -도냐 라모나가 빅토리타와 연결시켜준 남자는, 역시 도냐 로사의 카페에 앉아있던, '평범해보이던' 돈 마리오입니다. -한편, 돈 마리오는 인쇄소에 가난한 청년 엘로이 루비오를 고용하려 하고 있습니다. -엘로이 루비오는, 학사학위가 있을 정도로 나름대로 배운 청년이지만, 담배를 필 돈조차 없을 정도로 궁핍합니다. -돈 마리오가 그런 엘로이를 고용하려 하는 것은, 헐값에 능력있는 청년을 부려먹으려는 속셈입니다. -기가막힌 것은, 엘로이 루비오가 다름아닌 파코의 형이라는 사실입니다. -재능있는 청년 파코와 엘로이, 그리고 빅토리타는 너무나도 쉽게 늙은 사람들의 손에 가장 소중한 것을 빼앗기게 됩니다. - -이 소설에는 정상적인 사람들도 많이 보입니다. -예를 들어, 마르틴의 친구 나티가 마르틴을 애정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장면은 참 애틋해보입니다. -그런데 나티가 깔끔한 옷차림으로 다니고 마르틴에게 돈을 빌려줄 수 있는 것은 나티가 유복한 집 출신이라는, 그러니까 나티의 아버지 돈 프란시스코가 돈을 잘 버는 의사라는 점과 연관이 있을 것입니다. -서민을 대상으로 하는 병원을 운영하는 돈 프란시스코는, 말을 잘 해서, 그러니까, 환자들을 지속적으로 병원에 오도록 잘 유도하는 능력이 있어서, 상당한 수입을 거둘 수 있었습니다. -사회적 지위와 돈을 가진 이 남자는, 돈 마리오와 비슷한 짓을 저지르곤 합니다. -그러니까, 돈없는 여자들을 건드리기를 좋아합니다. -예를 들어, 하녀 호세파 로페즈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이들은 수녀원으로 보내졌습니다. -이 아이들은 아마도 커서 또 불행한 삶을 살게될 것입니다. -돈 프란시스코는, 소설의 말미에 가서는 전쟁고아가 된 열 세살짜리 소녀 마르체를, 그 소녀의 할머니의 시누이에게서 돈을 주고 취합니다. -도저히 있어서는 안되는 그런 일이 벌어지는 것이 당시의 마드리드였던 것 같습니다. -보통의 사람들 바로 뒤에서, 거짓말처럼 자연스럽게 일어납니다. - -마르틴의 친구이자, 공부 안하는 장수생 벤투라도 참 평범한 사람입니다. -노력은 하지 않으면서 아버지에게 허황된 말로 둘러대는 모습이나, 애인 훌리타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모습은 현대의 한국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을만큼 평범해보입니다. -벤투라와 훌리타가 만나는 장소는 도냐 셀리아가 세를 놓는 방입니다. -몰래 사랑을 나누는 남녀가 숙박하는 이곳은, 마치 모파상의 「벨아미」에서 뒤루아가 드 마렐 부인과 몰래 만나던 장소를 생각나게 합니다. -그런데 이곳은 동시에, 훌리타의 아버지이자 도냐 로사의 처형인 돈 로케가, 도냐 마틸데의 가정부 롤라와 만나는 곳이기도 합니다. -롤라는 아까 언급한 호세파 로페즈의 동생이며, 돈 로케도 돈 프란시스코와 마찬가지로 호세파 로페즈를 건드려 몇 명의 아이를 낳게 하기도 했습니다. -이정도로 난봉을 부리고 다니는 돈 로케의 모습을 보면, 돈 로케를 한심하게 생각하며 매번 욕을 늘어놓는 도냐 로사의 마음이 차라리 이해되기까지 합니다. -벤투라의 서사는, 훌리타와 돈 로케가 층계에서 서로 만나는 데에서 절정에 이릅니다. -돈 로케는 딸이 이런 곳에 출입한다는 사실에 놀라고, 훌리타 또한 아버지를 이런 장소에서 만났다는 사실에 당혹스러워합니다. -'이런 곳'을 운영하는 도냐 셀리아는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닙니다. -적어도 도냐 라모나처럼 적극적으로 부정한 짓을 저지르려 하는 사람은 아니라는 것입니다. -도냐 셀리아는 죽은 조카의 자식을 거둬서 키울만큼 따뜻한 마음씨를 지녔다고도 묘사됩니다. -하지만 이런 평범한 사람들의 바로 뒷편에는 말도 안되는 비정상적인 행태가 펼쳐지고 있습니다. - -# 5. 젊은 사람들의 불행 - -![colmena_5]({{site.url}}\images\2024-07-14-cela\colmena_5.jpg){: .img-40-center} - -세상에 부유한 사람과 가난한 사람이 존재하는 건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항상 있어왔던 일입니다. -빈부의 차이가 꼭 평등해져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. -예를 들어, 공산주의는 현대에 와서 실현이 힘든 것으로 판명됐습니다. -그리고 많은 경우에 빈부는 세습되기도 합니다. -그렇기 때문에 가난한 청년들이 때로 큰 불행에 빠져드는 것은 전혀 새로운 일이 아닐 수 있습니다. - -하지만 그렇다고 마르틴과 파코, 페트리타와 빅토리타, 엘비라, 마카리오와 세오아네, 호세파와 룰라 등의 불행과 가난이 당연하다고 말하는 건 너무 가혹해보입니다. -물론 이 청년들의 상황을 보편적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. -예컨대 '원래 세상은 그렇게 잔혹한거야' 라고 말하기에는, 스페인 내전 직후와 세계 2차대전 중의 혼란스럽고 어려웠던 마드리드의 배경을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. - -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에 나타난 청년들의 고난이 눈에 자꾸 밟히는 것은 이들의 모습이 현재의 한국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. -물론 우리나라에서 요새 굶어죽는 사람은 없을 것이며, 요즘의 20-30대가 힘들지라도 그 힘듦은 「벌집」에 나타난 역경과는 그 형태가 많이 다를 것입니다. -그래도, 돈 마리오가 엘로이 루비오를 꼬시는 장면은, 중소기업 사장이 어떻게든 사회경험이 없는, 그러나 전도유망한 젊은이를 살살 달래서 부려먹으려는 모습과 유사해보입니다. -소위 지식인으로 분류될만한 마르틴과 파코가 직업을 갖지 못한채로 방황하는 모습은 인문학 전공자들이 취업시장에서 좌절하는 모습을 떠올리게 합니다. -로베르토와 돈 마리오는 본인들의 성공에 기대어 '요즘 애들은 노력을 전혀 하지 않아'라고 말하며 노력하지 않는 자들을 경멸하는 소수의 성공한 사람들과 비슷해보입니다. -마리 테레와 알폰소, 벤투라와 훌리타, 파블로와 라우리타, 하비에르와 피룰라는, 그 엄격하고 혼란스러운 사회의 상황 속에서도 청춘들 간에는 순수한 사랑이 존재했음을 보여줍니다. -돈 로케와 돈 프란시스코, 돈 파블로는 위선적이고 비도덕하여 젊은 세대에게 끊임없이 고통을 주는 일부 기성세대의 아저씨들과 다를 바가 없어 보입니다. - -저는 스페인의 근현대사를 잘 알지 못해서 이 불행한 젊은 세대들이 어떻게 스페인의 사회를 형성해나갔는지는 모르겠습니다. -어쩌면 "그땐 모두가 가난했어"라고 말하는 우리나라의 50~70년대가 스페인의 전쟁 이후 사회와 유사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. -하지만 어쨌든 어린이들이 거리로 나앉고, 어린 학생들이 일하고, 젊은 청년들이 고통받는 시대는 참 암울했을 것 같습니다. - -- 책 정보 - - 책이름 : 「벌집」 - - 작가 : 카밀로 호세 셀라 - - 출판사 : 민음사 - - 출판연도 : 1950년 -- 그림 출처 - - [playground AI](https://playground.com/){:target="_blank"} -- 참고자료 - - [Wikipedia : The Hive (Cela novel)](https://en.wikipedia.org/wiki/The_Hive_(Cela_novel)){:target="_blank"} \ No newline at end of file